•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영화 (스압) 미녀와야수(1991)엔 있고 지금의 디즈니엔 없는 것

  • ㅇㅇ
  • 122
  • 10

개요

- 어릴 적 미녀와 야수(애니)를 보면서 품던 의구심 (1~2문단)

- 엄벌주의와 교화주의 (3문단)

- 미녀와 야수(애니) 속 대립관점의 혼재 (4~10문단)

- 대립요소의 존재가 갖는 긍정적 기능 (11~12문단)

- 인어공주(애니) 속 대립관점의 혼재 (13문단)

- 최근 디즈니 작품 속 관점의 편향화 및 그 전달방식의 조악함 (14~15문단)

- 겨울왕국의 서사 비판 (16~22문단)

- 주먹왕 랄프 2의 서사 비판 (23문단)

- 실사 알라딘의 서사 비판 (24문단)

- 실사 미녀와 야수의 서사 비판 (25문단)

- 결론 (26문단)

 

1. 91년작 미녀와 야수는 어릴 적 가장 재미있게 봤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 이야기에서 항상 의구심을 갖던 부분이 있었다. 개스톤은 악역이고 야수는 선역인데, 야수는 처음부터 선역은 아니었다. 초반의 야수는 그 괴팍한 성격만 보면 오히려 개스톤보다 더한 악당으로 느껴지고, 벨의 아버지를 볼모로 벨의 자유를 뺏으려 한다는 점에서도 개스톤과 비슷하다. 개스톤은 마을 사람들을 선동해 벨의 아버지를 정신병원에 가둔 후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조건으로 벨에게 자신과의 결혼을 강요하는데, 야수도 벨의 아버지를 잡아가둔 후 그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벨을 대신 성에 남게 만든다. 둘에게 차이가 있을까? 만약 개스톤이 자신의 계략을 성공시켜 강제로 벨을 자신의 아내로 만들어버린 후, 점차 벨이 자신에게 마음을 열도록 만들고 개스톤 자신도 조금씩 변해갔다면 개스톤도 야수처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을까?

 

2.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야수에게는 동정과 지지를 보내는게 가능해도 개스톤에게 그러기는 쉽지 않다. 사실 당연한 결과다. 이야기 전개상 야수는 결국 선역이 되고 개스톤은 악역이 되어야 하니 그에 걸맞게끔 각 인물의 묘사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두 인물을 선역과 악역으로 느껴지게끔 하는 묘사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3. 법이 범죄자를 응징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교화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는 인류사의 오래된 문제다. 두 관점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어느 쪽에 얼마만큼 더 비중을 둘 것인지는 끝나지 않을 논쟁거리다. 공분을 살 만한 범죄자가 가벼운 처벌만을 받고 나온 후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누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또 가해자에게 교화의 여지가 없고 심지어 처벌을 피하기 위해 법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강력한 법에 의한 단죄를 지지하게 된다. 반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나 낙인이 저지른 잘못에 비해 과하고 이미 속죄한 가해자에게 필요 이상으로 비인간적인 폭력을 행사한다고 생각이 들 때, 또는 가해자 역시 환경의 피해자이며 무자비한 처벌이 오히려 가해자를 더 범죄의 길로 빠뜨려 사회적 병폐를 초래한다는 생각이 들 때 교화주의적 관점에 지지를 보내게 된다.

 

4. 영화의 도입부를 보면, 왕자(야수)의 심성이 비록 못됐다 하더라도 요정이 내린 저주는 어린아이에게 내려진 벌로서는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느껴지고, 이 저주로 인해 야수의 성격이 완전히 파탄났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벨을 만나 개과천선한 이후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야수의 저주는 야수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마녀사냥으로 이어진다.

 

5. 반면, 개스톤은 내면에 뒤틀린 심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런 내면을 감추고 자신은 정의로운 척 하면서 오히려 마을 사람들을 조종하여 자신의 추악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비열함과 영리함을 갖춘 인물이다. 개스톤은 야수처럼 저주에 걸리지도 않았고, 마을에는 개스톤의 만행을 저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인물이 없다. 개스톤은 사회의 제지를 받지 않는, 또는 약하고 허술한 법망을 교묘히 이용하고 피해갈 수 있는 악인이다.

 

6. , 개스톤은 어느정도 인격과 정체성이 완성된 성인의 모습으로 느껴지게 묘사가 된 반면, 야수는 저주에 걸린 어린시절의 그 시점에서 정신적 성장이 멈춘 듯한 미성숙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야수가 충동적으로 저지른 초반부 만행들은 마치 버릇이 잘못 들은 아이의 문제행동이 교정돼나가는 걸 보듯 관대한 시선으로 넘어가줄 수 있지만(또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수를 벨이 조련시켜나가는 모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개스톤의 만행은 성인이 지능적으로 저지른 계획범죄에 가깝게 느껴져 관객이 관용을 베풀 여지가 적다. 엄벌주의와 교화주의적 입장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이자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사회 이슈로 떠올랐던 부분이 바로 청소년 흉악 범죄 증가에 따른 청소년 보호법 개정 문제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차이는 중요하다.

 

7. 결국, 이야기 속 야수는 교화 가능한 인물이고 개스톤은 교화 불가능한 인물이다. 야수는 엄벌주의의 폐단과 교화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물이고, 개스톤은 교화주의의 폐단과 엄벌주의의 심리적 당위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8. 또다른 중요한 차이도 있다. 야수가 변화해 나가는데는 저주를 풀어야 한다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있었다. 그리고 단순히 벨을 성에 묶어두기만 한다고 해서 야수의 저주가 풀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야수는 벨과 함께 지내게 된 이후에도 벨의 호감을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을 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그런 동기부여가 전혀 없었다면 벨을 만난다 해도 야수가 변화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개스톤의 구애는 단순히 벨을 자신의 트로피 와이프로 삼으려는 소유욕에 기반하기 때문에 일단 목적을 달성한 이후의 개스톤에게는 자신이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할 동기부여가 없다. 그렇다면 개스톤과 결혼할 경우 벨의 결혼생활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벨은 개스톤이 아닌 야수와 맺어져야만 한다.

 

9. 결국 두 인물의 운명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처벌의 존재 여부다. 요정의 저주는 엄벌주의적 단죄에 가까워 보이면서도 또한 교화를 통해 저주를 풀 가능성을 희미하게나마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교화주의적 처벌로서의 측면도 함께 가지고 있다. 만약 야수가 요정의 저주를 받지 않았다면 왕자의 신분에 있던 그는 아무런 통제 없이 자라며 개스톤과 다름없는 완벽한 악인이 되었을 수 있다. 결국, 야수가 저주를 받지 않고 자랐을 경우 어떤 인물로 성장하게 되었을지를 보여주는 거울상이 바로 개스톤이다. 야수에게 내려진 저주는 야수를 망가뜨렸지만 결국 그 저주 때문에 야수는 더 나은 인간이 되어 구원 받을 수 있었다. 야수의 초반부 모습이 무자비한 처벌로 인한 폐단을 보여주고 있다면, 개스톤의 모습은 처벌이 아주 가볍거나 거의 없다시피할 때 일어날 폐단을 보여준다. 또한 야수라는 한 인물 내에서도 초반부는 처벌의 역기능을, 후반부는 처벌의 순기능을 보여준다.

 

10. 결국 이야기는 야수를 변화시킨 사랑의 힘을 예찬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이 이야기는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 또한 개스톤이라는 인물을 통해 함께 보여주고 있다. 벨이 베푼 사랑의 힘은 일단 처벌과 구속 상황을 전제로 하여 힘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하지만 그 처벌 역시도 마냥 긍정적인 모습으로만 보여지지는 않는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듯 하면서도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고, 백지설을 지지하는 듯 하다가도 결정설을 옹호하는 듯 하고, 한편으로는 교화의 가능성을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교화 불가능한 인물을 상정하여 이를 반박한다. 이렇듯 이 이야기는 한쪽의 입장에서만 해석되지 않으며 중립적이다.

 

11. 물론, 이야기를 쓴 각본가는 이런 측면을 염두에 두고 개스톤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개스톤은 디즈니 이야기 속에 항상 나오는 뻔한 선악구도 속 악당의 역할을 맡고 있을 뿐이다. 특히, 야수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긍정하는 이 이야기의 주제의식을 생각해볼 때, 개스톤이라는 인물의 존재는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요소로 봐야 하지 않을까?

 

12.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사랑으로 깨우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들이 악인이 되는데 설령 환경의 영향이 컸다 하더라도,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이미 정체성이 완전히 확립된 이들은 쉽게 교화되지 않으며, 어쩌면 개스톤처럼 순수악이 되어있을 수 있다. 이 세상의 모습은 한쪽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반영하고 있지 않으며, 작품 속 대립된 관점의 혼재는 실제 사회의 모호성과 복잡성을 반영한다. 그리고 이는 작품의 몰입도를 높이는 요소가 된다. 결국, 개스톤이라는 인물이 존재한다고 해서 이야기의 의미가 희석되는 건 아니다. 어둠이 있어 빛이 더 환하게 느껴지듯, 개스톤의 존재는 오히려 두 주인공의 사랑을 더 극적으로 보이게 해준다. 각본가가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이런 대립 요소의 존재는 결과적으로 이야기의 맥락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고, 실제 세상의 모습을 더 정확하게 담아낸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난 이 작품의 서사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은 중요한 미덕이다.

 

13. 이런 특징은 미녀와 야수보다 2년 앞서 나온 인어공주에서도 보인다. 여기선 기성세대와 자식세대의 입장이 대립한다. 딸은 세상에 대해 도전적이고 심지어 무모하기도 하다. 딸인 아리엘이 보기에 아버지나 세바스찬은 꼰대다. 그렇지만 그들은 오랜시간 세상을 경험해왔기 때문에 더 많이 안다. 마녀의 속임수에 멍청하게 넘어가 노예계약에 스스로 사인을 해버리는 바람에 자신과 아버지의 안위를 위험하게 만듦은 물론 바다의 지배권을 악당에게 넘겨줄 뻔하는 대재앙을 초래한 아리엘과는 달리 세바스찬은 마녀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으며 따라서 마녀가 아리엘에게 제시한 그 계약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경험이 많은만큼 편견에 갇혀있기도 하다. 인간의 낚싯대가 위험하다는 걸 알기에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인간과 소통하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실제로 합리적인 부분이 있지만, 한편으로 태도를 조금 바꿔본다면 딸에게 더 나은 삶이 열릴 수도 있다는 것을 트리톤 왕은 생각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생각과 달리 딸이 한 눈에 반한 그 왕자는 전혀 아리엘에게 해롭지 않았다. 인간은 무조건 나쁘다고 단정지을 게 아니라 그 왕자가 착한 왕자인지 나쁜 왕자인지 확인해 볼 수도 있었다. 결국 기성세대와 자식세대는 어느 한쪽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맞고 틀린 것이 아니다. 양쪽 모두 옳은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이런 식의 세대갈등은 시대를 막론하고 계속 나타나게 된다.

 

14. 디즈니가 이렇게 양측의 입장을 모두 반영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이 두 작품을 만들던 시기가 바로 디즈니의 전환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동화를 소재로 한 작품들에서 현대적 재해석이 크게 가미되고 여성캐릭터에도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 이 쯤부터다.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는 원작동화 속 인어공주의 순애보적 사랑을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치환하여 자기 주관이 강한 첫번째 공주를 만들어내고 세대갈등을 모티브로 하여 현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로 재해석해냈다. 미녀와 야수는 첫눈에 반하는 게 아닌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점점 정들어가는 현대적 연애 양상이 처음으로 나타난 공주 시리즈였고, 왕자가 공주를 구원하는 게 아닌 공주가 왕자를 구원하는 양상을 띠는 첫 공주 시리즈였으며, 주제의식 면에서는 벨의 모습을 통해 효와 사랑, 관용 등 전통적으로 중요시돼오던 공동체적 가치를 다루면서도 후반부 개스톤이 마을사람들을 선동하는 장면에서는 다름에 대한 편견이 어떻게 차별과 혐오로 발전하는지 핵심을 찌르는 묘사로 다양성에 대한 포용이라는 pc적 주제의식을 처음으로 다룬 디즈니 작품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는 라이온킹 같은 고전적인 작품부터 뮬란 같이 관습적 성역할을 깨는 작품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이 나왔고, 하나의 작품 내에도 신구 가치관이 혼재되어있었다.

 

15.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디즈니는, 이젠 보수적 가치를 배격하고 아예 정반대 극단의 관점에만 치우치는 아집에 빠진 것 같다. 겨울왕국에서 은연중에 그런 모습이 느껴졌고, 이를 신호탄으로 주먹왕 랄프 2, 그리고 특히나 알라딘, 미녀와 야수의 실사 리메이크를 보면 pc적 메시지의 설파를 위해 서사적 유기성을 마구 훼손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것 같다. 어린이 높이의 영화임을 감안하더라도 그 전달방식이 너무 조악하고 내용에 전혀 공감이 안 된다고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16. 겨울왕국의 허술한 전개는 이 이야기가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고전 디즈니 공주물들보다 별반 나을게 없는 것 같다. 진정한 사랑의 힘이 지닌 마력이라던가 엘사의 마법 능력 같은 모호하게 제시된 판타지적 설정들을 그때그때 편한대로 해석해가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그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보이는데다가 전개 자체에도 설득력이 결여돼 있어서 짜증을 유발할 정도로 억지스럽다.

 

17. 주체적이고 진정한 사랑(active true love)을 찾아가는 안나의 여정이 특히 그렇다. 먼저 이야기는 첫 눈에 사랑에 빠지는 기존 공주들의 모습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 미성숙한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안나는 한스에게 배신당하고,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성숙한 사랑이란 바로 크리스토프다. 하지만 안나에게 있어 크리스토프도 한스와 마찬가지로 고작 말 몇 마디 섞어본 하룻밤 연애상대일 뿐인 건 똑같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올라프의 발언을 통해 크리스토프는 안나를 위해 희생하며 함께 어려움을 감내해줬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한스 역시 적어도 배신 전까지는 꽤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언니를 찾으러 간 안나를 대신해 혼란에 빠진 왕국을 통솔하고, 안나가 돌아오지 않자 안나를 구하기 위해 일행을 꾸려 엘사의 성으로 찾아가는데 여기서 거대 눈사람과 싸우다가 목숨을 잃을 뻔하는 위기도 넘겨야 했다. 한스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거짓으로 안나를 사랑한 것이라면, 크리스토프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얼음 장사로 살아가는 노가다꾼이 안나같은 권력자와 친분을 쌓아둬서 나쁠 이유가 없다. 실제로 크리스토프가 안나와 함께하게 된 이유는 안나가 크리스토프에게 금전적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즉 한스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로서 크리스토프가 제시되는 것에 당위성이 없다. 어쨌든 이야기는 또 방향을 선회한다. 이번에는 가족애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란다. 사실 말 몇마디 섞어본 게 끝인 외간남자들보다는 확실히 가족애가 더 진정한 사랑 쪽으로 보이긴 한다. 하지만 난 여기서 엘사가 안나의 저주를 풀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안나는 지속적으로 엘사와의 유대를 원해왔다. 엘사도 당연히 그걸 원했지만, 어릴 때의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와 자신의 힘이 안나를 위험하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를 거부해왔다. 엘사는 일부러 안나를 매정하게 대하며 스스로 고립을 택하고 힘든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안나는 이제 얼음이 돼 버렸고, 더 이상 엘사는 자신의 힘 때문에 안나를 거부할 필요가 없다. 안나가 얼어버린 이 마지막 순간이야말로 엘사가 자신의 모든 짐을 벗어던지고 안나에게 진심어린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순간이다. 그러니 안나의 저주를 푸는 건 엘사였어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기서 저주를 푸는 건 엘사가 아닌 안나 자신이다. 왜 이렇게 됐는지는 짐작 가능한데, 아마 제작진은 여성의 수동적이고 나약한 눈물이 저주를 푼다는 설정이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엘사가 안나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는 박탈당한다. , 제작진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 자체가 수동적이라고 생각했던지, 안나가 스스로 저주를 풀게 만들고 어떻게든 주체적인 맥락을 강조하려 노력한다. 안나의 희생은 주체적인 사랑('actve' true love)이기 때문에 기존 디즈니 공주들의 그냥사랑(true love)보다 낫고 더 좋은 희생이라는 억지 차별화는 어이가 없다. 사랑에도 주체적이냐 수동적이냐 선을 긋고 따지며 이야기를 가위질해대는 제작진의 태도는 짜증이 난다. 이런 것에 집착하는 이들은 페미니스트들밖에 없을 것이다.

 

18. 이렇게 안나의 희생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었다면, 왜 처음의 안나는 엘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는지 그 당위성에 의문이 남는다. 이야기의 논조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후반부의 안나만이 엘사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설득력이 없다.

 

19. 안나가 한스를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으며 사랑에 미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성장을 이루는 과정은 언니에 대한 사랑의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말 몇마디 섞어본 이방인일 뿐인 한스와 달리 엘사는 안나의 가족이다. 가족이란 것은 남자친구를 사귈 때처럼 서로 잘 맞는지 안 맞는지 사귀어 보고 이게 진짜 사랑인지 아닌지 결혼할지 안 할지를 결정하는 그런 대상이 아니라 애초에 가족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끈끈하게 이어지는 관계다. 두가지 사랑은 전혀 별개의 속성을 지니므로 안나가 이성교제에 있어서 보여준 미숙함을 근거로 가족인 엘사에 대한 사랑의 미숙함을 주장할 수 없다. 실제로 안나가 언니와의 소통에 문제를 겪는 이유는 안나의 미숙함 때문이 아니라 엘사가 소통을 계속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엘사와 엘사의 부모님, 그리고 안나의 기억을 지워버린 트롤 할아버지까지 주변 인물들이 작당하여 안나에게 엘사의 비밀을 계속 숨겨왔기 때문이다. 적어도 안나는 어릴 때부터 이야기 전반에 걸쳐 줄곧 언니와의 유대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언니를 위해 위험을 무릅쓴 여정을 하는 모습에서 처음의 안나 역시 충분히 언니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고, 적극적이면서 위험을 마다 않는 안나의 성격을 생각할 때 처음의 안나라고 해서 위기상황에 처한 언니를 구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 같지 않다. 따라서 언니와의 관계에 있어서 안나가 정신적 성장을 이루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실제로 그러한 성장이 보여진 적도 없다. 이 이야기에서 안나가 엘사와의 관계에 있어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엘사와 대면하고 교감을 나누던가 적어도 안나가 어릴 적의 사고와 엘사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되는 사건이 꼭 필요해 보이지만 그런 사건은 없었고, 결국 언니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안나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안나의 무조건적인 희생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람을 깊게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던 안나 쪽 서사의 주제의식이 엘사의 구원과 연결되기에는 전개가 너무나도 허술하고 안이하다. 두 서사의 연결점을 굳이 찾아보자면 한스의 배신이 안나에게 있어 언니를 좀 더 소중하게 여길 간접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맥락만이 존재할 뿐이다. 결국 안나의 서사와 엘사의 서사는 별개의 독립된 서사에 가까우며, 엘사의 능력이 가진 문제는 뜬금없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해결되고, 안나 쪽 서사는 첫 눈에 사랑에 빠지던 기존 디즈니 공주들의 모습을 풍자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맥락을 가지지 못하는 채로 따로 논다.

 

20. 그리고 이런 이상한 전개를 하나로 묶어서 이해할 단서는 바로 급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는 결혼 및 출산을 통한 가족관계의 형성은 가부장제를 통한 여성에의 억압을 의미하며, 이에 기여하는 모든 것은 부정적인 것이다. 여성이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것, 그리고 모성애라는 감정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과의 한심한 연애에 빠져있는 안나라던가 또는 부모의 모성애 등은 초반에 엘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남성을 배제하고 여성끼리의 연대를 이루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며, 한스나 크로스토프와의 관계에서 안나가 이룬 정신적 성장이란 바로 이 점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며, 여성을 해방하는 액티브트루러브(‘active’ true love)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야기를 보면 왜 가족애가 초반에는 엘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는지, 왜 안나가 겪은 이성교제에서의 시행착오가 뜬금없이 자매애의 완성으로 귀결되는지 모든 흐름이 자연스러워진다. 물론 이건 단지 한가지 상징적 해석일 뿐이고, 개인적으로도 이런 해석은 싫어한다.

 

21. 하지만 굳이 이런 식으로까지 바라보지는 않더라도, 이 이야기가 두 남성 등장인물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두 여주인공의 자매애를 강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고, 이를 위해 한스와 크리스토프 관련 내용이 억지로 끼워져 이야기의 흐름을 깨고 있다는 느낌 자체는 지울 수 없다. 이 이야기에서 결국 사랑의 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었다면,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야 할 부분은 바로 안나와 엘사의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이다. 실제로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동화 눈의 여왕에서는 게르다가 카이를 찾아 가는 힘겨운 여정과 이를 통해 게르다의 애틋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이야기 전체의 흐름이며, 마지막에 흘린 게르다의 눈물이 카이의 마법을 녹이면서 이 여정의 마지막 종지부를 찍는다. 하지만 겨울왕국에서는 안나가 엘사를 찾아간 첫 여정은 실패로 끝난다. 이후 두 자매는 안나의 희생으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말 한마디 주고받거나 얼굴 한 번 맞댄 적이 없고 안나와 한스, 크리스토프의 관계가 이야기의 주축이 되어나가다가 문제의 해결은 갑자기 자매애를 통해 이루어진다. 자매애의 완성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만 자매애를 보여주는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 정작 중요하게 보여져야 할 부분은 내팽개치고 남성과의 연애 문제를 자매애의 완성으로 연결시키는 이 이야기의 태도를 보면 이야기가 어떤 부분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지 분명하고, 바로 그 부분 때문에 이야기의 전체 흐름이 삐걱거린다. 원래의 주제의식을 살리면서 다른 요소들 또한 함께 공존할 수 있었지만, 원하는 의도인 공주에게는 왕자가 필요없다슬로건을 위해서 대립요소를 고의적으로 배제 또는 왜곡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작품의 의미가 축소될 뿐만 아니라 전개의 설득력도 상실했다.

 

22. 이 이야기는 이보다 더 풍부한 맥락을 지닐 수 있었다. 어린시절의 사고가 사실 엘사의 잘못 때문이 아니었음에도 정확한 상황을 모르는 엘사의 부모님이 마법을 무조건 위험하다고 단정짓고 엘사가 마법을 억제하며 살도록 유도했다는 점에 착안해 보면 어떨까? , 안나가 과거의 기억을 잃어 어린시절의 사고나 엘사의 능력에 대해 알지 못하는 채로 그동안 두 자매의 소통이 단절돼온 것이 두 사람 모두에게 있어 문제를 키우는 요인이 됐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야기를 짰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이야기는 이런 모든 문제를 덮어놓고 결말부분에서 판타지적 요소에 대한 즉흥적인 설정 추가를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23. 다음은 랄프2를 보자. 여주인공 바넬로피는 자신이 속해있던 기존의 게임에 싫증을 내고 새로운 게임으로 가길 원하지만, 여기에 관객이 공감을 보내기는 어렵다. 게임의 주인공인 바넬로피가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 버리면 원래의 게임이 어떻게 돼 버릴지에 대한 걱정을 둘째 치더라도, 랄프는 바넬로피의 게임이 오락실에서 없어져 버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정작 장본인은 자신의 게임이 어떻게 되든 말든 걱정도 안 되는지 혼자 배부른 공상에 빠져있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무책임한 바넬로피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랄프라는 캐릭터는 바넬로피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싸이코패스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1편에서 구축된 두 인물의 정체성은 아무런 고민 없이 파괴돼 버린다. 만약 한 집안의 가장인 주인공이 자신의 꿈을 위해 식구들의 생계 문제를 내팽개쳐 버린다면, 그리고 주인공의 마음씨 착한 친구가 오히려 주인공을 대신해 주인공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 주고 있는 상황이라면, 주인공의 꿈을 마냥 지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작품은 선행을 베푼 그 친구를 오히려 정신병자로 묘사함으로서 반대의견을 매도하고 일축한다.

 

24. 실사판 알라딘의 자스민 공주는 성차별의 서러움을 토로하는 speechless라는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이 노래를 어떤 상황에서 부르는지를 보면 어이가 없다. 악당 자파가 막강한 램프의 힘을 손에 얻고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와 자신을 위협함은 물론 나라를 전쟁통에 몰아넣고 있는 이 상황에 다른 건 다 놔두고 자파의 성차별적 비아냥 한마디가 그렇게 서러워서 저런 노래를 부르는데, 자기 부녀와 나라의 안위를 걱정해야 될 판국에 고작 저런 문제로 징징댈 심리적 여유가 있을 사람은 없다. , 초반부 자스민의 행동을 보면 배고프다는 아이에게 상인이 파는 빵을 멋대로 집어서 줘 버리는데, 시장바닥의 상인은 배고픈 아이들에게 당연히 빵을 무료로 나눠줘야 하지만 왕족으로서 누구보다 더 부유하게 살아왔을 자스민 자신의 팔찌 하나는 내줄 수가 없다는 내로남불은 기가 막힌다. 그 팔찌가 어머니의 유품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지기는 했지만, 그런 사정이 있다면 나중에 돈을 주겠다고 얘기하고 양해를 구하던지 자스민의 태도는 너무 뻔뻔하다. 원작과 달리 왕이 되기 위해 공부도 하고 백성의 생활상에도 관심을 갖는 실사의 자스민이 구매와 판매라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상식조차도 없고 상황대처능력도 이렇게 떨어져서는 왕이 될 재목이 정녕 맞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 알라딘이 나타나 자스민의 팔찌를 되찾아주고 추격전이 시작되는 장면을 보면, 이 시점에서는 그 팔찌가 자스민 어머니의 유품이라는 걸 자스민 본인만 알 뿐 알라딘도 모르고 상인도 모르고 심지어 관객도 모르는 상태인데, 결국 실사판의 알라딘은 시장바닥에서 예쁜 여자 어떻게 한번 꼬셔볼 수작으로 진상 부리는 여자 편을 들어주고 상인을 엿 먹인 한심한 거렁뱅이밖에는 안 된다(원작의 알라딘은 분명 큰 곤경에 처해있던 자스민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하지만 pc주의를 표방하는 제작진들의 입장에서는 시장바닥에서 빵 파는 자본주의 앞잡이 상인놈보다 왕의 딸로 부유하게 자란 자스민 공주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전개에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25. 실사판 미녀와 야수의 벨은 이제 야수를 사랑으로 감싸서 깨우칠 수 있는 아량을 가진 캐릭터라기보다는 도도하고 신경질적인 페미니스트 전사로 느껴진다. 물론 부당하게 성에 갇히게 됐으니 심기가 불편할 것이고 또 그게 현실적이지만, 실사영화 속 벨에게는 부드러워 보이는 면모가 안 나타나도 너무 안 나타난다. 엠마 왓슨의 연기 문제가 크겠지만, 연출도 분명 그런 뱡향으로 이루어졌다. 절대로 벨이 마음 약한 캐릭터로 그려져서는 안된다는, 강한 여성으로 묘사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느껴진다. 영화 속 두 사람의 로맨스는 어색하기 짝이 없다. 벨이 야수에게 갑작스레 호감을 보이게 되는 전환점은 고급 교육을 받고 많은 책을 읽어온 야수의 박학다식함을 벨이 알게 되면서부터인데, 원작에 비해 이 부분이 매우 크게 강조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신여성으로서의 벨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둘의 교감에서 이런 측면만이 강조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실사판의 야수는 원작에서처럼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아니라 성인이 된 후 폭정으로 나라를 다스리다가 저주에 걸리게 된 것인데, 단지 많이 배웠기 때문에 여성의 마음을 얻고 또 그 때문에 저주를 풀어 과거의 만행을 세탁한다면 이야기가 이상해진다. 게다가 벨에게 바로 좋은 방을 내주고 식사에도 초대하며 초반부터 나름의 노력을 했던 애니 속 야수와 달리, 실사의 야수는 벨을 감옥에 가둔 채 내버려 두고 벨을 감옥에서 풀어준 하인들에게 도리어 화를 낸다. 본인이 저주를 풀려고 노력하기는커녕 하인들의 그런 노력을 도리어 비웃는다. 그런데도 자기가 책 좀 많이 읽었다는 걸 과시하며 잘난 척 한번 해주니 벨이 알아서 하트를 뿅뿅 날려주고 야수는 너무 쉽게 벨의 사랑을 얻는다. 반면, 개스톤은 이제 원작에서처럼 벨의 책을 흙탕물에다 집어던지며 내 트로피 구경이나 하러 가자는 식의 말도 안 되는 구애를 하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모습의 구애를 하고 있음에도 사람이 변해봤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벨에게 청혼을 거절당한다. 이제 실사의 벨은 깨어있는 신여성인 자신과 레벨이 안 맞는 시골 청년을 편견으로 바라보는 그런 캐릭터로 느껴진다. 벨을 진취적 여성으로 묘사하는 데만 관심을 두었지 정작 이야기에서 강조돼야 할 측면은 흐리멍텅해진 것이다.

 

26.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설득력도 갖추지 못한 이런 허술한 서사를 보면, 제작진은 pc적 주제의식을 어떻게 이야기에 끼워넣을 수 있을까만 생각할 뿐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고 매력적인 이야기가 될지 이야기 그 자체에 대해서 별로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지고도 주토피아처럼 얼마든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주토피아 같은 오리지널 작품과는 달리 속편이나 실사판은 원작이 가진 큰 세계관과 방향성이 있기 때문에 그 틀을 존중하면서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되도록 각색이 이루어져야지 메시지를 위해 이야기가 뒷전으로 밀려나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디즈니가 기업이미지 세탁을 위해 속편과 리메이크를 희생양 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 그 자체다. 과거의 영광을 사골처럼 우려먹으면서 메시지 전달을 위해 적당히 짜맞추기식으로 급조된 듯한 이런 얄팍한 프로파간다가 아닌, 이야기 그 자체에 집중한 오리지널 작품들이 예전처럼 디즈니에 다시 나와주었으면 한다.

    ㅇㅇ
    12 Lv. 13412/15210P

    댓글 10

    profile image
    1등 Amy 2020.10.24. 00:04
    오랜만의 고퀄 스압글이네 일단 선추천박고 내일 읽는다
    댓글
    2등 ㅇㅇ [code :6dccf9] 2020.10.24. 02:27

    잘 읽었다
    글 쓰는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겠네
    날씨도 쌀쌀한데
    대단한 열정이다
    내년에 워너 브라더스에서 제작하고 개봉 예정인 CG 실사영화 '톰과 제리'의
    사운드트랙에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How About You 가 있단다

    댓글
    ㅇㅇ 작성자 2020.10.24. 12:30
    ㅇㅇ
    역시 영화음악 사전 아재 ㅎㅎ
    정말 좋은 노래네요
    댓글
    3등 ㅇㅇ [code :fcd1c4] 2020.10.24. 10:34

    나도 나중에 각잡고 읽는다 딱대

    댓글
    ㅇㅇ [code :3a51f3] 2020.10.24. 12:58
    오늘 일어나자마자 읽었음. 공감 500배!
    댓글
    ㅇㅇ 작성자 2020.10.24. 20:23
    ㅇㅇ
    긴 글 읽어줘서 ㄳ
    댓글
    ㅇㅇ [code :fcd1c4] 2020.10.24. 13:26
    초반 미녀와야수 개스톤에 대한 관점은 신선하게 잘읽었다 이거야
    겨울왕국은 노무길어서 술술 읽었지만 게이 의견에는 거의 동감임. 기존 공주, 사랑, 성역할 이런거 비틀면서 잘 만들면 모르는데 군데군데 삐걱거리고 보다보면 인공적인 좆같음이 느껴짐
    랄프2랑 좆라딘 실사는 시발 영화로 취급도 안함
    저딴것들 흥행하면 안되는데 통 탄 할 노릇 임

    막줄 - 과거의 영광을 사골처럼 우려먹으면서 메시지 전달을 위해 적당히 짜맞추기식으로 급조된 듯한 이런 얄팍한 프로파간다가 아닌, 이야기 그 자체에 집중한 오리지널 작품들이 예전처럼 디즈니에 다시 나와주었으면 한다.

    이거 완벽하게 반박하는 최신작 - 뮬란 실사화 깔깔깔

    좆즈니는 시발 현실적으로 망할일은 없을거같고
    걍 걸러줘야됨 개씹노답
    댓글
    ㅇㅇ 작성자 2020.10.24. 20:22
    ㅇㅇ
    겨울왕국은 내용만 잘 다듬었으면 90년대 명작라인에 낄 급 될텐데
    노래는 그렇게 좋게 뽑아놓고 후반부 ㅄ같이 조져놓은게 아깝다
    그리고 너무 길어져서 안 썼지만 뮬란 실사도 진짜 영화 ㅄ임
    짱깨코인 영화 처망해서 기분 딱 좋다
    댓글
    profile image
    Amy 2020.10.24. 22:06
    방금 읽었다 글잘쓰노 ㅋㅋㅋ
    게이가 언급한 영화들도 당연히 다 병신이지만 난 특히 물란2보고 진짜 존나 분노했는데 물란2도 까줘라 이거야
    댓글
    ㅇㅇ 작성자 2020.10.25. 00:56
    Amy

    사실 뮬란 그 ㅄ영화도 할말 많은데
    추가할까 하다가 너무 길어져서 걍 관뒀음 ㅋㅋㅋ

    댓글

    댓글 쓰기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별점
    공지 영화/드라마를 추천하는 게시판입니다. admin 19.05.05.18:57 4929
    2001 영화
    image
    잡식동물 20.10.24.14:04 62
    영화
    image
    ㅇㅇ 20.10.23.23:37 122
    1999 영화
    image
    톰과제리 20.10.23.14:26 77
    1998 영화
    image
    잡식동물 20.10.21.21:32 99
    1997 영화
    image
    잡식동물 20.10.21.19:11 215
    1996 영화
    image
    잡식동물 20.10.20.21:09 55
    1995 영화
    image
    잡식동물 20.10.17.22:00 91
    1994 영화
    image
    잡식동물 20.10.17.17:35 50
    1993 영화
    image
    ㅇㅇ 20.10.16.13:13 90
    1992 영화
    image
    ㅇㅇ 20.10.15.23:53 90
    1991 영화
    image
    토렌트 토렌트 20.10.15.20:12 73
    1990 영화
    image
    ㅇㅇ 20.10.13.13:06 46
    1989 영화
    image
    잡식동물 20.10.11.18:03 50
    1988 영화
    image
    잡식동물 20.10.11.15:40 75
    1987 영화
    image
    잡식동물 20.10.11.11:31 54
    1986 영화
    image
    잡식동물 20.10.08.16:53 78
    1985 영화
    image
    잡식동물 20.10.08.16:40 62
    1984 영화
    image
    톰과제리 20.10.07.14:25 47
    1983 영화
    image
    톰과제리 20.10.06.18:26 82
    1982 영화
    image
    ㅇㅇ 20.10.04.21:18 87